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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골방의 과학자' 벗어나라 … 인문학 강조하는 과학고

조회수5580 2014.02.03

한성과학고에선 국가경쟁력 높일 인재가 큰다



한성과학고 전교생은 대학 교수와 함께 1년간 R&E연구를 한다. 대학 교수 연구팀에 들어가 대학생과 함께 실험·연구를 하며 프로젝트를 완성한다. 사진은 R&E연구를 위해 실험을 하고 있는 학생들의 모습.

국가경쟁력이 기초과학에 달려있다고들 한다. 과학 인재 양성이 국가 발전에 직결된다는 얘기다. 공교육에서 기초과학 분야 인재를 위한 특화 교육은 과학고와 영재학교가 맡고 있다. 특히 2년만에 조기졸업이 가능한 과학고엔 빨리 자신의 진로로 나아가고 싶은 과학 영재가 몰린다. 서울 서대문구 한성과학고는 올 졸업생 95%가 의대 등이 아닌 이공계로 진학했다. 김득호 교장은 “수업을 따라가다보면 이공계에 흥미가 생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성과학고 교육방법은 한마디로 ‘깨닫기’다. 과제가 주어지면 책 보고 실험하고 친구와 토론하며 스스로 문제를 해결한다. 잘 풀리지 않아 도움을 청하면 교사는 비슷한 연구 주제를 다룬 논문을 추천하거나, 관련 분야를 연구하는 대학 교수를 만날 수 있도록 연결해준다. 교사가 “A는 B다”라고 알려주는 대신 학생이 답을 찾는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겪고 자신만의 아이디어를 구체화하는 과정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이런 교육 방침이 잘 드러나는 교육 과정이 과제연구와 R&E(Rearch&Education)프로그램이다.

 과제연구는 연구 주제를 학생이 직접 선정해 한학기 내내 실험·분석과 전문가 자문 등을 거쳐 결과를 보고서로 제출한다. 김출배 교감은 “연구 과정에서 반드시 필요한 실험인데 학교에 기자재가 없는 경우가 있다. 이때는 담당 교사가 지인을 총동원해 실험을 반드시 할 수 있도록 돕는다”고 말했다. 2학년 정민주 양은 지난 학기에 ‘면 섬유를 이용한 바이오에탄올 제조 가능성 탐구’라는 과제연구를 수행했다. 필요한 실험을 못해 관련 논문을 참고하는 수준으로 보고서를 작성하려고 하자 담당 교사가 고려대 화공생명공학과 교수를 소개해줬다. 정양 연구내용을 살펴본 교수가 연구실을 내줘 한 학기 동안 대학에서 실험할 수 있었다.

 과제연구가 학생 주도 프로그램이라면 R&E는 대학에서 1년동안 고급교육을 받는 거다. 고교생이지만 대학 교수의 연구 프로젝트 일원이 돼 대학이나 연구소의 연구 진행방식을 체험한다. 교수 1명이 학생 4명을 맡는다. 이런 R&E 프로그램은 과학고나 영재학교 외에 일부 자사고나 일반고에서도 시행한다. 다른 점은 여타 학교들이 성적우수자나 올림피아드 입상자 등으로 R&E 참여를 제한하는 데 반해 한성과학고는 전교생에게 참여 기회를 주고 있다.
 
 


과제연구 발표 모습. 자신이 직접 주제를 정하고 해결한 과정을 한 학기에 한번씩 제출한다. 보고서 내용이 좋으면 전교생 앞에서 발표한다.

학생끼리 묻고 답하고 … 매 시간 토론

 영재만 모였다는 과학고 수업 분위기는 어떨까. 한용익(수학) 교사는 “문제 풀이 하나도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다”고 혀를 내둘렀다. 수학 문제 하나를 놓고도 학생들이 제각각 “이런 풀이방법이 더 좋지 않냐”며 아이디어를 쏟아내서다. 한 교사는 “그냥 두면 자연스럽게 토론이 벌어진다”며 “(교사인) 내가 가르치는 것보다 학생끼리 배우는 게 더 많다”고 말했다.

 과학 시간에는 토론 분위기가 한층 더 뜨거워진다. 정주혜(생물) 교사는 “유전자 조작이나 줄기세포 등 인문학적인 고민이 필요한 주제가 나오면 심도있는 토론이 이뤄진다”고 얘기했다. 신명(2학년) 군은 “과학자가 되고 싶은 학생이 모였기 때문에 과학 발전의 영향력이나 과학 윤리에 대한 고민을 항상 한다”며 “피상적 토론이 아니라 ‘앞으로 나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를 고민하면서 마음 속 이야기를 털어놓게 된다”고 말했다.

 이런 학생들에게 도움을 주려고 인문학 교육에도 열심이다. 독서를 권장하기 위해 독서 발표회나 독서 골든벨 대회, 명사 초빙 강연회 등도 수시로 연다. 김 교감은 “과학 인재는 골방의 전문가가 아니라 한국 미래를 이끌 리더로 성장해야 한다”며 “세상과 사람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반드시 마련해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추천도서 선정은 과목 별로 한다. 사회는 『나쁜 사마리아인들』(장하준), 수학은 『어떻게 문제를 풀 것인가』(G.폴리아)를, 지구과학은 『우주 기원 빅뱅』(사이먼 싱)을 각각 추천하는 식이다. 구자관(국어) 교사는 “과학고 학생은 문학이나 사회과학 책을 읽어도 과학 분야와 연결지어 영감을 받아 새 연구 주제를 만들어 낸다”며 신기해했다.
 
 


① 체육대회 때 농구를 하고 있다. 한성과고는 서울지역 과고 연합 체육대회에서 3년 연속 1위를 했다.
② 노벨상 수상자 초청 강연회에 참석한 학생이 강연자에게 꽃다발을 건네고 있다.
③ 경기도 파주에 있는 적암초등학교를 방문해 과학에 대해 알려주는 봉사 활동 모습.
④ 삼성전자가 주최한 과학토크콘서트에 참여한 학생들.


수능 부담 없어… 바빠도 여유있다?

 과학고 학생은 대부분 2년만에 졸업하다보니 2년이 정신없이 돌아간다. 교과 수업은 물론 각종 연구와 보고서, 독서지도까지 이어져 잠시도 쉴 짬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정창규(2학년) 군은 “바쁜 건 사실이지만 노는 시간도 엄청나다”며 웃었다. 이게 가능한 이유는 “수능시험에 대한 압박이 없어서”다. 대다수 재학생이 수시전형으로 대학에 진학하기 때문에 수능 준비에 목맬 필요가 없다.

 잘 노는 한성과학고 학생의 끼를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은 학급주간발표회다. 학급 단위 대항전으로 벌이는 일종의 교내 축제인데, 학급별로 뮤지컬이나 합창·연극 등 반 전체가 호흡을 맞춘 작품을 올린다. 원작을 베껴서 올리는 경우는 거의 없고 학급 개성에 맞게 각색한다.

 외부인은 과학고 학생이라고 하면 수학·과학만을 잘하는 학생이 다닐거라 오해한다. 하지만 프로젝트 연구, 실험 수업, 독서와 토론 등 문·이과를 넘나드는 융합 수업을 받다보면 수학·과학뿐 아니라 인문학 소양도 높아진다. 과학고 수업을 통해 전 영역의 성적이 두루 높은 영재로 성장한다는 얘기다. 우수한 학생일수록 진로에 대한 고민도 많은 법. 이공계 기피 현상 심화로 우수 학생이 의대로 대거 몰리는 현실 속에서 이 학교 학생들은 이공계로 진학하는 데 대한 두려움이 없을까. 신군은 “선배들을 보면 오히려 이공계에 대한 확신이 생긴다”고 말했다. 한성과학고는 졸업생과 재학생을 멘토·멘티로 연결해준다. 교사가 줄 수 없는 현장 정보를 선배로부터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신군도 선배 조언을 통해 진로를 구체화했다. 그는 “대학에서는 기계공학과를 전공하고, 이후에 MBA(경영학석사) 코스를 밟아 이공계 출신 CEO가 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학교에서 각별히 신경쓰는 부분은 학생 건강이다. 아침마다 태권도와 필라테스를 시키고, 밤 12면 무조건 소등, 전원 취침을 원칙으로 한다. 박학서 교무부장은 “학생끼리 내버려두면 경쟁심 때문에 밤 새워 공부만 한다”며 “공부는 100m 달리기가 아니라 마라톤이니 체력을 관리해주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2학년 학생이 말하는 우리 학교
"학원 강사보다 친구에게 물어보는 게 낫다"


Q. 중학교 때 엄청난 우등생이었겠다.

A. 아니다. 수학·과학은 1~2등이었지만, 전과목 성적은 전교 100등이 넘은 적도 있다. 친구들도 대부분 전교 10~20등 수준이었다고 한다. 과학고에 걸맞게 수학·과학에 재능이 있는 학생을 선발하는 것 같다.

Q. 좋아하는 과목이나 실력이 다들 비슷하니 성적 관리가 힘들겠다.

A. 쉽지 않다. 게다가 과목별로 천재가 몇 명씩 있다. 아무리 공부해도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막강 실력자들 말이다. 1학년 때는 그런 친구 보면서 좌절했다. 조금 지나니 모르는 걸 그 친구한테 물어보면 되니 오히려 좋더라. 성적 때문에 힘들 때는 선생님이 큰 힘이 된다. 어떻게 공부할지 구체적으로 조언해준다.

Q. 사교육은 많이 받나.

A. 천차만별이다. 학원 다니는 친구가 있는가하면 인강(인터넷강의)도 안듣고 혼자 공부하는 친구도 있다. 대부분 한 과목 정도는 학원에 다닌다. 그렇다고 학원에 전적으로 의지하는 건 아니다. 학원에 많이 안다니는 이유는 학원 강사보다도 옆 친구한테 물어보는 게 낫기 때문이다.

Q. 자기 공부하기도 바쁜데 다른 친구 도와줄 시간이 되나.

A. 학교 분위기가 정말 좋다. 모두 잘 되자는 분위기다. 노트 필기는 물론 학원 프린트물까지 전부 공유한다. 누가 물리 노트 정리 잘했다고 소문나면 전교생이 다 그 노트 복사해서 본다. 누가 힘들어하면 기숙사 같은 방 친구는 자습시간 빼서 상담해주고 그런다.

Q. 기숙사 생활은 어떤가.

A. 4명이 한방 쓴다. 모이면 공부 이야기만 한다. “아까 수업 시간에 들은 거 있잖아” “네 과제연구는 어떻게 하고 있어”라며 의견을 나눈다. 점호 준비하면서 이렇게 이야기하다보면 막혔던 문제가 풀리기도 한다. 만약 혼자 지내면 이런 아이디어 교환이 안되니 답답할 거 같다.

Q. 학교생활 중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은 뭔가.

A. 급식이다. 메뉴가 완전 감동이다. 갈비탕·삼계탕·닭꼬치가 평소 메뉴다. 갈비탕은 뼈에 고기가 정말 많이 붙어 있고 삼계탕도 진짜 닭한마리 제대로 나온다. 디저트로는 케이크 등이 큼직하게 나온다. 특히 수능 전날은 밥에 검정콩으로 ‘합격’ 글자 만들어서 진짜 맛있게 나온다. 집에서 먹는 것보다 훨씬 좋다.

Q. 과학고 온 걸 후회한 적은 없나.

A. 한번도 없다. ‘과학고 안 왔으면 어쩔뻔 했나’하는 생각은 자주 한다.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수학이나 과학 좋아한다고 하면 ‘재수없다’거나 ‘잘난 척한다’고 싫어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여기서는 다들 수학·과학에 빠져 있으니, 밥 먹으면서도, 놀면서도 관련된 이야기만 한다. 좋아하는 걸 공유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

Q. 과학고에 진학하고 싶어하는 후배들에게 조언해줄 말이 있다면.

A.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건 다르다. 과학고는 수학과 과학을 좋아하는 사람이 와야지, 성적이 좀 잘 나온다고 해서 오면 안 될 것 같다. 워낙 수학과 과학 수업이 많고 연구과제며 R&E가 생각보다 훨씬 힘들다. 좋아하니까 하는 거지, 이 분야를 별로 좋아하지 않으면 얼마 못 가서 지치게 된다.
 
신입생 이렇게 뽑아요
지원자 학교 방문해 학생 다면 평가


“중학생에게 높은 수준의 과학 지식과 기술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다만 이 분야에 흥미와 적성이 있는 학생을 발굴하고자 합니다.”

 정주혜 입학홍보부장(사진)은 한성과학고 입학 과정을 “한줄 세우기가 아닌 여러 줄 세우기”로 설명했다. 성적 한 가지 기준만으로 등수 매겨 당락을 가르는 대신 지원자를 다양한 기준으로 살펴 합격자를 고른다는 얘기다. 다시 말해 중학교 내신 1등급, 수학·과학 3년 내내 100점이라도 합격 보증수표를 받은 건 아니라는 의미다.

 한성과학고는 서울 지역 거주자만 지원할 수 있는 특수목적고등학교다. 입시는 100% 자기주도학습전형으로 이뤄진다. 평가는 서류와 면접으로 나뉘는데, 서류(자기개발계획서와 추천서) 평가로 2배수를 선발한 뒤 면접을 두 번 한다.

 자기개발계획서에는 지원동기와 진로계획, 성장과정, 독서, 인성요소 등을 기록한다. 올림피아드 등 교내외 각종 대회 입상 실적이나 영재교육원 교육 수료 여부, 수학·과학 교과 능력시험이나 인증시험 점수 등을 기재하면 오히려 불이익을 받는다. 교사 추천서도 중요하다. 지원자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중학교 교사가 관찰한 내용이 학생 평가에 큰 영향을 미친다. 면접에서는 이 두 서류 내용을 바탕으로 진위를 판별하고, 서류에 담지 못한 학생 잠재력을 발견하는 데 주안점을 둔다.

 두번의 면접 중 첫번째는 방문 면접이다. 지원자 중학교를 입학사정관이 찾아가 담임 교사는 물론 수학·과학 교사를 만나 학생에 대해 질문한다. 정 부장은 “수업 태도나 교우 관계 등 다양한 정보를 얻는다”고 설명했다. 지원자와는 1시간 넘게 만나기도 한다. 중학교로 찾아가 친근한 분위기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평소의 꾸밈없는 모습을 보는 것이다.

 두번째는 소집 면접이다. 한성과학고로 불러 1박2일 동안 진행한다. 첫째날은 수학·과학에 관한 공통질문이 주어진다. 질문은 서울 소재 과학고(한성과학고·서울과학고·세종과학고)의 교사들이 공동 출제한다. 지난해에는 수학 1문제, 과학은 분야별로 2문제씩 출제됐다. 면접에 앞서 학생들에게 질문을 미리 공개한다. 문제에 대해 24분간 생각할 시간을 준 뒤 3명의 면접관 앞에서 답변하게 한다. 둘째날은 개별 질문 시간이다. 이때도 면접관 3명이 학생 1명에게 질문하는데, 제출 서류 내용을 주로 묻는다. 인성 평가도 이때 이뤄진다. 질문은 이런 식이다. “과학실험시간에 네가 조장을 맡았다면 과학상식이 풍부한 친구와 인간성이 좋은 친구 중 누구를 조원으로 선발하겠냐”고 묻는다. 정답은 없다. 면접관은 학생의 선택 이유를 듣고 점수를 매긴다. 개별 질문 시간은 10~15분 정도다.
 

 김득호 교장은 면접을 강조하는 이유에 대해 “학생의 알맹이를 보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교육 도움을 받아 스펙을 만들고 서류를 작성한 학생은 심층 면접에서 거의 가려진다는 것이다.

                                                                                                                                         글=박형수 기자
                                                                                                                                      사진=김경록 기자


 

                                                                                                                                       [출처: 중앙일보]

                                                                                                                                     2014년 01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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